무형문화재 35호 금휘궁 김금휘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5-06-26 15:56:55 조회수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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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무형문화재 무속인  김금휘! 

  


 

마포 밤섬도당굿 이수자 유명한무속인 김금휘가 전하는 밤섬도당굿은 밤섬의 실향민들이 이 섬의 전통을 전승하고자 지내는 마을굿이라고 전했다.


이 굿은 2005년 1월 10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밤섬부군당의 내력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밤섬의 역사적 내력과 부군당의 내력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밤섬의 내력은 여러 기록에 전하고 있다.

밤섬은 여의도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북과 남의 하중도(河中島)로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사람이 살면서 많은 폐단이 있었던 과정이 나타나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명종실록(明宗實錄)'에 이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은 밤섬 주민들의 생활상을 여의섬과 함께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부로의 왕래가 뜸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한 듯 섬 주민의 생활방식이 대체로 유분방하고 남녀가 서로 업고 업히며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또한 동성동본이고 반상이고 따지지 않고 의논에 맞춰 살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고, 간원의 교화가 덜 된 곳으로 지목되었다. 성남유명한점집 금휘궁 김금휘는 또한 이곳의 한강물이 워낙 깨끗해 창전동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식수로 직접 마셨다고 한다. 마씨, 인씨, 석씨, 선씨 등 희귀성의 대가족이 많이 거주하면서 은행나무 고목(당산목)과 부군당이 있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다.




 

 

부군당 자체의 기록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와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中宗實錄)에 그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해당 기록을 정리하면 부군의 내력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淫祠中 今京師各司有神祠 名曰付根堂 訛呼府君堂一祀所費 至於累百金 或曰 付根 乃宋氏姐所接 四壁多作木莖物以掛之 甚淫褻不經 '或曰 付根者 旣爲官司之根 而其懸木莖者 以寓人之根爲腎莖 故作莖物以象之' 外邑亦祀之"라고 되어 있다.

아울러서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에는 '中宗己卯 罷各司付根神祠 先是 國俗各司付根 其來已久 至是 先焚紙錢 傳關各司皆焚之 禁其祠 人多稱快'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당용한점집 금휘궁은 또한 두 기록의 핵심을 정리하면 음사로 하는 것의 과중한 자금을 지적하고, 부군당(府君堂)은 부근당(付根堂)의 와음(訛音)으로서 나무로 만든 신을 걸어놓는다고 하며, 이는 송씨 소저가 접물하는 곳으로 간주한다고 여겨 부군당에 나무로 만든 음경을 걸어놓는 이유를 해명했다.

실록에서는 이를 불태웠다고 하고, 음사 배격의 과정을 말했다. 오늘날에도 부군당에 음경을 보관하는 용례가 있다. 이것은 방앗고지 부군당의 사례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 밤섬부군당의 전통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현재 이 당에 이러한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밤섬[栗島]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한강의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현재 서강대교가 섬 위를 관통하고 있다. 밤섬은 1968년 2월 10일 여의도 개발의 일환으로 폭파되어 당시 62가구 443명의 원주민은 마포구 창전동과 우산 산중턱으로 집단이주했다.

밤섬 주민들이 자신들의 섬에서 해오던 마을굿을 창전동의 부군당에서 재현해 현재까지 전승하고 있다. 당주무당은 김춘강이며 당주악사는 김찬섭으로 남매간이다.

밤섬부군당도당굿은 실향민의 아픔을 간직한 굿이며 마을 주민 중심의 마을굿이다. 그러나 대거 마을 사람들이 떠나면서 그 전승력이 약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당주무당을 중심으로 굿이 유지되고 있다.

구조적으로 볼 때 밤섬부군당도당굿은 마을굿의 변형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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