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신앙사전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4-11-14 22:48:48 조회수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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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신장 [盲人神將]

정의
전문적으로 점복(占卜)에 종사하는 맹인(盲人)들과 무당이 모시는 점복신. 자손의 번영과 가운(家運) 대통, 무병장수를 도와 주며 눈병을 고쳐 주기도 한다.

유래 및 내용
과거 한국에서는 전문적으로 점복에 종사하는 맹인이 있었다. 맹인신장은 이런 맹인들과 무당들에 의해 점복신으로 모셔진다. 서울굿에서는 뒷전에서 모셔지기 때문에 맹인신장잡귀잡신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잡귀잡신은 죽어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무런 정체성도 지니지 못한 채 정처 없이 떠도는 이름 없는 사령(死靈)을 가리키는 데 반해 맹인신장은 뒷전에 나오긴 하지만 무당들과 마찬가지로 독경이나 점복과 같은 민속 신앙의 사제로서 활동했던 맹인 점쟁이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잡귀잡신이라기 보다는 무조신(巫祖神)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맹인은 ‘판수(判數)’ 또는 ‘장님(杖林)’으로 불렸다. 이는 대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점을 치는 사람이란 뜻으로 풀었다. 이능화는 항간의 풍속을 소개하면서 집을 수리하거나 동토(動土)하거나 남의 집에서 음식이나 의복이 들어온 후에 가족 중 누군가 질병이 생기면 귀신의 빌미라 하여 무당을 불러 귀신에게 치성을 드렸다. 이때 경(經)을 읽고 잡귀를 쫓는 것이 맹인의 일이라 하였다. 또한 손진태는 처음으로 ‘맹격(盲覡)’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맹인 가운데 일년간 가정의 안강(安康)과 행복을 위하여 경문을 읽고 병자나 집 안에 들어온 악귀를 구축(驅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서 이와 같은 주술 신앙적 직능을 지닌 맹인을 일컬어 맹격이라 불렀다고 하였다.
손진태의 연구에 의하면 독경은 본래 장님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고려시대 불가(佛家)와 술가(術家)의 영향을 받아 점치고 안택(安宅)하고 잡귀를 쫓아 병을 고치는 장님들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들을 ‘맹승(盲僧)’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서울굿의 마지막 거리인 뒷전에서 맹인신을 모시는 이유는 과거에 맹인 점쟁이들이 이러한 역할을 한 것과 관계가 있다. 맹인 점쟁이가 사람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듯 맹인신이 그 집의 답답한 일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곽각(郭覺), 이순풍(李順風), 황계관(黃鷄冠) 등 실제로 점복을 행한 유명한 맹인들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모셔지기도 한다. 특히 맹인거리에서는 맹인이 눈을 뜨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맹인의 눈이 밝아지듯이 이 집의 앞길을 밝게 해 주고 액운을 막아 달라는 의미가 있다.

지역사례
맹인신장은 서울굿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굿에서 모셔진다. 서울굿에서는 천신굿에서 뒷전 거리의 하나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동해안별신굿에서는 맹인거리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이때 맹인거리는 안질(眼疾)을 퇴치하는 굿이다. 이 굿은 안질 환자가 있는 집에서 각각 성(姓)이 다른 일곱 집을 돌아다니며 쌀을 동냥하여 스무 번 씻어서 시루에 백설기를 쪄 독상에다 바치고, 일반 제수를 차린 상을 그 옆으로 나란히 차려 놓고 무(巫)가 굿을 진행한다. 동해안별신굿의 맹인거리 과정에서는 심청이 부친의 개안(開眼)을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환생하여 부친을 다시 만난다는 내용의 무가 사설을 구연하고, 맹인대(盲人竿)로 안질 환자의 눈을 씻어준다. 맹인대는 100㎝ 정도 길이의 죽간(竹竿)에 백지를 오려서 만든 지전(紙錢)을 잡아맨 것이다. 이 맹인대의 지전으로 굿을 구경하는 관중의 눈을 씻겨 주면 그 관중의 당사자는 맹인대의 지전에 돈을 달아매 준다. 이것은 눈병을 앓지 말며, 눈이 계속해서 밝으라는 액막이의 뜻이다. 여기서 눈을 씻겨 주는 방법은 무가 지전을 맨 맹인대를 가지고 관중의 눈앞을 스쳐가는 행위를 3~4회 반복하는 것이다. 이 굿은 맹인거리가 강조되는 과정이며, 다른 과정은 일반 굿과 같다. 맹인거리에 이어 거리굿을 하고 전부 끝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