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점집 금휘궁 김금휘






▲ 무속인 금휘궁 김금휘
(성남=국제뉴스) 김두호 기자 = 성남 분당 서현 유명점집 으로 유명한 금휘궁을 만났다. 그녀는 그동안 살아 온 삶과 무속인이 된 과정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사업하면서 알게 된 토속신앙 무속, 평범한 개인사업가 김금휘 무속인 김금휘로

금휘궁 용한점집 상담 손님은 서울 강남 강북 성남 분당 및 안양 수원 화성 군포 하남 용인 수지 죽전 일산 부천 광주 강남 강북 과천 등 경기도 각지에서 찾아오죠. 그래서 소문난점집 으로 유명해 지고 있어요.<웃음>

분당에서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났어요. 교통사고이후 사업은 파산을 하고, 금전은 금전대로 몸은 몸대로 다 한꺼번에 망가져 버린거예요. 망가지는 것도 벼락같이 망가지더라구요, 이러다 죽는 건가보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거에요. 절망이라는 표현밖에는 없었어요. 참으로 힘든시기였죠.

당시 저보고 가물이 세다고 눌림굿을 해야한다. 무당이나 하지 무슨 사업을 한다고 저러고 다닌다는 등등,,, 별말을 다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사업을 하면서 알게된 무속인이 저보고 신을 올려 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제물을 준비하고는 계룡산으로 갔어요. 큰 바위 앞에다 제물을 차려놓고는 무속인은 축원을 하고 저는 합장을 하고 기도하던중 축원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는 갑자기 저도 모르게 옆에 있던 방울, 부채를 잡고는 벌떡 일어서면서 '왜 나는 안부르는 거예요!' 하며 제가 애기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축원을 하던 무속인이 '어 그래, 그래 누가 왔나?', '나는요 장군동자예요, 왜 나는 안부르고 다른 동자만 불러요! 우리 장군님 대따 커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나는 분명히 난데 혼자서 막 떠드는 거예요. 그리고는 다른 신령님이... 또 다른 신령님이 자꾸 들어오시는 겁니다. 별 천지 였어요. 그날 그순간들은 절대 잊혀지질 않네요.

평범하게 살던 김금휘는 이렇게 사업하면서 알게 된 토속신앙 무속인으로부터 무속인의 길로 접어 들게 된 거예요.

◆7살 때부터 엄마 배아퍼 머리아퍼 하던 어린딸

어려서부터 '엄마 배 아퍼, 엄마 머리 아퍼' 어린 저를 등에 업고 친정엄마는 병원을 전전긍긍 하였어요. 하나뿐인 딸이 안타까워 해 달라는 건 다 해주셨죠.

워낙 무속을 잘 모르고 사셨던 어머니 인지라 어릴적에 온 무병을 잘 모르셨던 거죠. 제 나이 29살에 친정아버지가 분당에 상가를 물려 주신거예요. 친정 재산을 물려 받고 그때부터 파란은 시작 된 듯해요. 아주아주 힘든 시기였죠, 이때가 저를 무속의 길로 접어 들게 한 때입니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무속의 길

저는 신굿하고 신내림만 하면 다 잘 불리는 줄 알았어요. 신내림 하자마자 잘 불리는 무녀들 많다고 하듯이....

저는 신내림하고 신령님께서 7년을 시집살이 시키셨어요. 워낙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자라서 그런지 인내력이 없던 저를 인내력을 키우라고 고통을 주신 듯 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절 밀어버리지는 않으셨어요. 어느날 일주일을 고생을 해서 금휘궁이라는 이름을 짓고는 금휘궁으로 7년만에 다시 시작 했어요.

신어머니께서도 금휘가 신령님 치맛자락 안 놓고 이만큼 오는 걸 지켜 보신게지... 하시며 그간의 고생을 어루만져 주셔요. 금휘궁이란 이름을 지으면서 한동안 개명을 많이 했어요.

그때 여러사람들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지금은 이름 지어 주시던 도사할아버지가 도 닦으러 가셔서 이름을 지을 수가 없다고 해요.<웃음>

◆무당을 실험하고 다니는 엄마와 아들

금휘궁이라 이름짓고 활동하던 어느날 모자가 찾아와서는 A4 용지를 내민다. 아빠, 엄마, 아들 3명 해서 사주를 적어왔다.

양어머니를 보고는 '무당 아니에요', 손을 휘두르며 '아니예요', 저의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거예요. '여기 아들 3명 중 다르다는데 뭐가 다른 거예요?'

같이 온 아들이 입을 열며 '제가 입양 되어서 이 집으로 들어왔어요' '여기 엄마 아빠가 키보드 엔터키 누른 것처럼 줄이 가 보이는데...', '올해 1월에 이혼 했어요'

그때가 11월 이었어요. 관재로 인해 시끄러운 상태였는데, 일주일 후에 아들이 봉투를 들고 찾아와서는 봉투를 신령님 전안에 올려 놓고는 굿 해주세요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솔직하게 말해야 할거 같아서 한다며 예전에 엄마가 점사를 보러온적이 있었다며 그때 당대표 나가는 분 사주를 들고 왔었다며 '턱걸이로 되겠네요' 하고 점사 봐주적이 있었는데 기억나냐고 묻는데 어렴풋이 기억이 날 듯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양어머니 뒤로 신당이 보이는데 무당이예요 해서 어머니가 기절할 뻔 했다고하며 당시 엄마는 신을 받고 휘황찬란하게 신당을 꾸미고 수내동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였다고 하네요

그 후 신당을 정리하고는 다시 절 찾아 다니다 이제야 찾았다하네요 4년만에요...<웃음>, 말을 하자면 끝이 있겠어요.<웃음>



◆나쁘다는 것은 100% 믿어라

한달에 한 두 번은 신가물에 찌들어 오는 사주나, 신을 잘 못 받아 정처없이 헤메는 사주가 있다. 신의 길을 빗겨 갈수 있다면 굳이 신내림을 해주지는 않아요.

신의 길을 가려면 조상을 꼼꼼히 잘 살피고 살펴야 해요. 조상의 업이 잘 닦여 업이 깨끗한 기자는 무당으로 잘 나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본인은 열심히 한다 해도 조상의 업이 닦일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집안이 무교인지라 저도 조상의 업이 닦일 때까지 고생이 많았어요.

◆금휘궁 유명세를 타다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무속인으로도 유명하죠. 신(神)역학으로 푸는 사주풀이가 유명해요. 신점 + 철학인것이죠.

얼마전에는 머리 산발하고 찾아왔다는 말이 딱 들어 맞는 상담손님이 왔어요. 동업을 하는데 투자한 돈도 있고 일의 진척은 안되고 답답해서 온거죠.

'다른 무속인집 다니는 곳 있네요', '네 있어요', '동업자 이사람 도망가요', '네??? 제 돈 때문에요!', '아니요, 다른 뭔가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외국으로 갈거예요' '저는 어떻게 하죠?' '얼른 투자한 돈 회수해요'

하여 정성을 들여 달라고 해 정성을 들여 투자한 돈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후 보름 지난 후에 헐레벌떡 찾아와서는 선생님 말이 맞았다며, 동업자가 외국으로 가버렸는데, 한국에서 많은 돈을 가지고 가버렸다고 한다.

3년을 다니던 곳에서도 이런 공수를 내려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상담을 하면서 그렇게 콕 찍었서 알려주셨냐며 정말 신기하단다.

한 번은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상담하러 왔는데 집에 신모신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모시고 있다한다.

사실 점보러 잘 다니지 않는데 친한친구가 꼭 가보라 해서 왔다며, 그 친구가 일년 전 궁합을 보러 왔었는데 결혼을 반대하였고 꼭 결혼을 해야겠으면 당분간 아이는 낳지 말라고 했는데, 결혼하고 딸애기 낳고는 남편과 헤어졌다한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금휘궁에서 했던 상담이 기억에 남는다고 친구에게 중요한 일을 결정을 하려면 꼭 상담을 하고 조언 받으라 했다고 그래서 왔다고. 그 후로도 중요한 사항이 있으면 꼭 찾아와요.

이렇게 신점과 철학을 겸비 해 상담을 하니 다른 곳 보다는 다른 점사가 많이 나온다네요. 애기를 하자면 끝없는 많은 일화들이 있고 그렇게 입소문이 난 게 끝이 없는거죠.

항상 오시는 상담자들이 편하게 카운슬러 받고 가는 금휘궁이랄까요, 힘들고 어려운분들 어디가서 하소연 못하는 분들 오시면 돌아 가실 생각을 안하고 오래 있다가 가고 싶어 하셔요.

저는 굿하라 소리도 잘 안해요, 굿은 선택 사항이라고 저는 생각하죠. 굿을 꼭 해야 하는 상담자에게는 어디 가서든 마음 내키는 곳에 가서 정성 꼭 들이시라고 권하기만 해요. 이래서 소문이 나는 건가 싶네요.

이처럼 금휘궁 무속인 김금휘는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주신 많은 것들에 감사한다"며"덕분에 가족 모두 평안하게 잘 풀린다. 지난날도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신령님 모시고 가겠다"고 말한다.

한편 굿의 종류에는재수구, 신굿, 진작굿, 내림굿, 우환굿, 여탐굿, 진오귀, 진진오귀, 묵은진오귀, 영혼결혼식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